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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콜라의 문화생활/TV 방송 이야기

박영규 결혼 네번째 아내 25세 연하 만남 공개 딸 아들 4인용 식탁 후기

by 김콜라스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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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결혼 네번째 아내 25세 연하 만남 공개 딸 아들 4인용 식탁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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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A ‘4인용 식탁’에서는 박영규가 출연해 현재의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를 공개했다. 박영규는 1973년 대학로 소극장 무대로 데뷔, 연극 배우로 활동 중 1986년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돼 브라운관에 진출했다. 이후 그는 1998년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박영규는 배우 강성진, 윤기원, 김정화를 현재 아내와의 첫 만남 장소로 초대해 양식 풀코스 요리를 대접하면서 네번째 아내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2019년 네번째 재혼 소식을 알리며 화제가 됐던 박영규. 아내는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 여성으로 25세 연하로 알려졌다. 사실 박영규는 지난 1983년 대학 후배와 결혼을 했지만, 13년 만인 1996년 이혼했다. 다음 해 그는 유명 디자이너와 재혼했지만 2001년 암 투병을 하던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됐다. 2004년 세번째 결혼식을 올렸지만 끝내 헤어졌다. 모두가 궁금했던 네번째 결혼 스토리에 대해 공개한 박영규.

이 곳에서 아내와 결혼했다. 이 회사가 아내 직장이다. 친척,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해서 결혼을 축하한 장소다. 많은 분들을 초대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평소 친분 있던 작가를 통해서 오피스텔 분양 소식을 들었다. ‘좋은 매물 있으면 나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담당자 연락처를 줬다. 여자 분이더라. 다음날 분양 사무소를 가서 실물을 봤는데 눈에 확 띄더라. 운명이더라. 누군가가 돌싱 같다고 하더라. 마음에 들어도 너무 어려서 두려움이 생기더라. 25세 연하다. 계약을 핑계로 더 대화를 할 수 있지 않나. 일단 계약을 했다.

박영규는 계약을 핑계로 네번째가 아내가 될 25세 연하 여성과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세번째 이혼 후 새출발이 쉽지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홍보를 도와주면 점수 좀 따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 앞자리에 앉아서 손님 들어오면 나도 같이 인사했다. 쉬운 일 아니다. 돈 주고 와서 해달라고 해도 안하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거다. 좋은 배필을 만나고 싶긴 했다. 혼자 살기 힘들었다. 5년 전, 65세 됐을 때 여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절실했다.

당시 박영규 아내의 지인들이 박영규의 마음을 눈치챘다. 싱글맘인 아내를 안쓰럽게 본 지인들이 조력자가 되줬고, 드디어 첫 데이트가 성사됐다. 그러나 아내가 만남 직전 약속을 취소했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도 화를 낼 수 없지 않나. 마음 넓은 사람처럼 괜찮은 척 했다. 집에 운전하고 가는데 눈물이 쏟아지더라.

몇번의 취소 끝에 드디어 첫 데이트가 성사됐다. 그러나 당시 아내는 아는 동생과 나왔고, 지인 동반 데이트가 되버렸다. 박영규는 자신에 대해 어필했지만 쉽지 않았다.

제가 죽으면 집도 있다. 자식도 없다. 그때 옆에 있던 동생이 ‘선생님이 더 오래 사실 것 같다’며 고춧가루를 확 뿌리더라.

박영규는 아내에게 매달리는 것에 한계가 왔다.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매달리는 것도 한계가 왔다. 어느 날 내가 마음을 먹었다. 내 마음도 확인하고 싶더라. 너무 결혼에 급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날부터 연락을 안 헀다. 근데 전화가 오더라. 6개월이 지났다. 어느새 가을이 됐고 낙엽이 떨어지는데 보고싶어 먼저 문자를 보냈다. 10초 만에 답문이 오더라. ‘드디어 성공했구나’ 했고, 그 다음부터 일사천리였다. 3개월 만에 결혼했다.

당시 아내가 6개월간 연락이 없었던 이유는 “저렇게 능력 있고 인기 많은 사람이 왜 나를? 가벼운 마음인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박영규의 문자가 진실되게 다가와서 그의 마음을 받아주게 됐다. 박영규는 자동차 선물을 하며 프러포즈를 했다.

우여곡절을 겪고 2019년에 결혼했다. 딸이 고전무용을 전공했다. 아내가 딸을 태워주고 통근으로 차가 중요하다. 차가 있는데 옛날 중고차였다. 길에서 고장이 났다. ‘내 사람 될텐데’ 라며 사고 날까 걱정이 되더라. 그래서 자동차 매장으로 가서 키를 줬다. ‘결혼 해야 되겠다, 결혼하자’고 했다.

‘4인용 식탁’에서 밝힌 박영규가 생각하는 행복은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이었다. 박영규는 2004년 유학 중 불의의 사고로 떠난 아들을 떠올렸다.

어떤 것이 행복이냐고 물어보면, 젊은 시절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안정감에서 오는 행복, 또 마주보고 있으면 ‘아내가 있어서 참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행복아닌가. 아내가 나한테 ‘딸이 있지만 당신이 원하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더라. 우리 아들이 22세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살아 있으면.. 1983년생이니까. 나는 ‘돼지띠, 83’ 하면 너무 가슴이 이상하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또 자식을 낳아서 그런 일을 당할까봐 트라우마가 생겼다. 대신 당신 딸을 내 자식처럼 키우겠다고 했다. 딸을 잘 키우고 있다.

박영규의 딸은 현재 중학생이다.

중학생인데 뭐든 스스로 다 한다. 엄마한테 치대지 않고 코로나 때도 자기가 예약해서 주사 맞으러 간다. 치과 가는 것도 자기가 예약하고 공부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모른다. 두 번의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할아버지 소리 들어야 할 나이에 ‘아빠’ 소리를 들으니까 두 번 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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