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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콜라의 문화생활/TV 방송 이야기

김영임 근황 건강 안면마비 갑상선암 자궁적출 우울증 원인 이유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3

by 김콜라스 2024.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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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임 근황 건강 안면마비 갑상선암 자궁적출 우울증 원인 이유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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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시즌3’에 국악인 김영임이 출연했다. 김영임은 집안끼리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김윤지를 며느리로 맞게 된다고 전했다. 시아버지 이상해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고.

며느리긴 한데 애틋한 게 있다. 윤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애처로운가보다. 굉장히 따뜻하다. 그런 걸 보면 (이상해가) 아내한테 하는 것과 자식한테 하는 건 다르더라. 이상해 씨는 자식들한테 진짜 잘한다.

결혼이라는 건 우리는 생각 조차 안했는데 둘이 이미 만났더라. 티를 안 내서 전혀 몰랐다. 나중에 이상한 기류가 흘렀다. 결혼하기 직전에 윤지가 우리집에 놀러오겠다고 하더니 펑펑 울기만 하는거다. ‘아버님, 어머님 저 오빠한테 시집올게요’라고 했다. 딸은 친정 엄마 가까이 있는 게 최고라 친정 근처에 집을 해줄테니 살아라 했더니 시댁 근처에 살겠다고 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집 5분 거리에 집을 마련했다. 그렇게 1년 정도 있었는데 사는 집 3층에 집이 나와서 그곳으로 이사왔다.

이상해와의 첫 만남을 회상한 김영임.

옛날에 나이트클럽을 가수들이 하루에 7~8개 서면 돈을 많이 벌지 않았나. 그렇게 해서 무대에 서기 시작했는데 이상해 씨가 거기에 MC였다. 내가 ‘옹헤야’를 하면 MC가 받아줘야 했다. 서로 얼굴을 트고 지내던 어느날 날 보고 커피를 마시자는 거다. 갔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결혼을 하자는 거다. 계속 나한테 연락하고 그러더니 결혼하자고 이야기했다. 내가 24살에 만났는데 28살에 결혼했다.

그전에 동료들이 날 보고 양수리에 놀러가자고 했다. 딱 내렸는데 맨발로 수상스키를 타더라. ‘저사람 뭐하는 사람이냐’ 라고 했더니 이상해라고 하더라. 나를 소개해주려고 몇몇 사람들이 타이밍을 자기들끼리 약속한거다. 근데 스키를 너무 잘 탔다.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4년 교제했는데 이상해 씨가 기자회견을 만들었다. 시간 맞춰 가보니 기자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결혼에 대해 질문하니까 무서워서 부정못하고 12월에 결혼한다고 했다. 얼떨결에 결혼했다.

방송에서 김영임은 40대에 앓던 우울증을 고백했다. IMF 당시 무직 남편 대신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면서 안면 마비 경험과 갑상선암 수술을 고백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우울증을 심하게 알았다. 정말 심했다. 돈을 벌어 아이들 뒷바라지를 했다. 그때 (남편) 이상해 씨가 아무것도 안 할 때다. IMF가 오면서 남편 사업이 저조해지면서. 남편은 본업 외에 다른 거로 돈을 벌었다. 골프 관련 사업이나. IMF 이후 사업이 기울면서 내가 일을 해야 했다. 현철, 송대관, 태진아와 돌아가며 계속 콘서트를 했다. 일주일 내내 콘서트로 지내다보니까 나한테는 무리였다.

나는 오롯이 홀로 완창을 해야 하는데 공연을 한 후에는 옷을 벗지 못할 정도로 땀범벅이 됐다. 그렇게 열심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잠이 안 오고 식사도 못할 정도가 됐다. 몸무게가 48kg을 유지했는데 불과 몇달만에 40kg으로 내려갔다. 피골상접해서 죽을병이 걸렸나보다 했다. 의사 선생님과 2시간 동안 상담하며 울었다. 그랬더니 진단받은 병명이 우울증이었다. 거의 1년 가량 공연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잠이 안 오기 시작하더니 음식도 먹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죽을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이 한쪽이 안 움직이는 것 같더라.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 굳어 가기 시작하는 거다. 안면 3차 신경 마디 진단을 받았다. 스트레스 때문에 오는 게 있고 힘들어서 오는 게 있는데 얼굴 반이 굳어 말도 못할 정도였다. 한쪽 눈이 안 감기더라. 그후로 1년을 쓰러진채 살았다. 바깥에 나가지도 못하고 6개월간 매일 얼굴에 수백 개의 침을 놨다. 그렇게 몇달을 지내니 조금씩 돌아오더라. 지금도 약간 불편하다. 하지만 또 가슴에 돌 같은게 생겼다. 손이 들어가질 않았다. 유방에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을 가니 의사 선생님이 갑상선암이라고 하더라. 종양이 성대에 붙어 있었다. 8시간 동안 수술을 했다. 노래를 못할까봐 걱정은 하지 않았다.

회복 후 열심히 일하는데 하혈을 하는거다. 양동이째 쏟았다. 하지만 행사비 8백만원이라는 말에 솔깃해서 그 몸 사태로 공연을 하러 갔다. 결국 의사 선생님이 ‘죽으려고 애를 쓴다’는 말에 자궁을 들어냈다. 큰 수술을 2번 했다.

김영임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소리에 입문했다.

다른 사람보다 늦게 (19살에) 시작했다. 고전무용하다가 소리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됐다.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와서 전공이었던 고전 무용을 포기하고 소리에 입문했다. 그런데 (집에서) ‘너 기생 되려고 그러느냐’ 라며 머리를 자르고 집에 감금시켰다. 한 스님에 의해 이 자리에 있게 됐다. 우리 언니가 ‘우리집 화근덩어리’ 라며 나를 스님한테 보여줬다. 스님이 딱 보더니 ‘보살님 동생은 보살님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빨리 하루라도 동생이 원하는데로 내보내라’고 하셨다. 스님 말을 듣고 통곡했다. 그후부터 소리를 시작했다.

소리를 시작한지 3개월 만에 KBS ‘연말 장원상’을 받았다는 김영임.

어는날 지화자 씨가 펑크를 낸 방송에 대타로 출연하게 됐다. 박춘석 씨가 날보고 얼굴을 보자 그래서 갔더니, 소리 중에 ‘회심곡을 아냐’고 물어보더라. 한소절 듣더니 전속 계약에 들어갔다. (계약금으로) 우리 엄마 집 사는데 도와줬다. 국악한 지 1년 조금 넘었는데 우리나라 최고들만 모여있었다. 패티김, 나훈아, 남진, 이미자, 문주란 거기에 내가 들어갔다. 거기는 신인도 안 키웠다. 그때 내가 스물한 살이니까 남색 치마에 흰저고리 입고 꽹과리에 회심곡을 불렀는데 그게 대박이 터졌다.



사진: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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